하나님의 축복
[아들아], 이제는 계획된 틀에서 너를 놓아주마 본문
[아들아], 이제는 계획된 틀에서 너를 놓아주마
어릴 적부터 선생님은 늘 우리에게 ‘모든 것은 다 하찮은 것이고 오로지 학문만이 고귀한 것이다.’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고학력자만이 출세할 수 있고 가문을 빛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저는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고 출세하고자 하는 소망도 허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태어난 후 저는 모든 희망을 아들에게 걸었고 아들이 장차 출세하기를 바랐습니다. 아들이 옹알옹알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저는 아들에게 글자와 당시(唐诗)를 가르쳤습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 선생님이 아들 손가락이 길어서 피아노를 치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 주었습니다. 반년이 지나자 선생님은 아들이 피아노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고 터득 능력도 있으며 배우는 속도가 빠르니 피아노 급수 시험을 한번 보라고 말했습니다. 또 피아노 급수 시험에서 10급을 받으면 나중에 대학 입학시험에서 가산점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아들에 대한 저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했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일 아들이 나중에 음악으로 성공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설령 피아노를 배워 큰 성과가 없다고 할지라도 등급 증명서로 대학 입학시험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잖아.’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내어 아들을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고 아들과 함께 피아노 연습을 하기 위해,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직서를 내고 집에서 아들의 ‘연습 파트너’가 되어주었습니다. 피아노 연습은 아주 따분했습니다. 매일 몇 곡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했는데 아들은 심하게 짜증을 냈습니다. 특히 주말에 아래층에서 장난치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오면 집중해서 피아노 연습을 할 수가 없었고, 자기도 아래층으로 내려가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다고 투정도 부렸습니다. 간절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아들의 표정을 보며 저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 급수 시험이 코앞인 것을 생각하니 아들의 장래를 위해 이런 고통은 반드시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생을 많이 해봐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고생하지 않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저는 또 영어 학원을 등록해주었습니다. 아들은 날마다 학교와 피아노 학원을 오가며 바쁘게 보냈고, 주말에는 또 영어 학원과 도서관에 가야 했습니다. 말하기 좋아하고 잘 웃던 아들이 서서히 말수가 적어지고, 온종일 언짢은 표정으로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았으며,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않았고, 툭하면 화를 내고, 평소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에게 억지를 부린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제 친구가 집으로 놀러 왔는데 장난삼아 아들에게 “너는 아빠가 좋아 아니면 엄마가 좋아? 누가 더 좋아?”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아들은 망설임 없이 “누구도 안 좋아, 우리 엄마는 마귀할멈 같아, 마귀할멈이 좋을 수 있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또 말했습니다. “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엄마는 매일 네가 피아노 연습할 때 곁에서 자리를 지켜주고, 또 날마다 학교에 데려다주고 고생하시잖아.” 그러자 아들은 화를 내면서 “나는 엄마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싫어. 피아노 치는 것도 지겨워. 언젠가는 이 피아노를 부숴버리고 말 거야!”라며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그 말이 마치 힘센 주먹으로 저의 가슴을 강하게 내려친 것처럼 아파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들의 출세를 위해 희생하고, 물질과 정력을 쏟아부었을 뿐만 아니라 직장마저도 포기했는데, 아들은 저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미워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전에는 저와 말하기를 좋아하고 장난치고 놀기 좋아하던 아들이 지금은 엄마를 마귀할멈 같다고 한 뜻밖의 말에 저는 정말 울고 싶었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온몸에 힘이 쫙 빠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런 방송 기사를 보았습니다. ‘모 학교 한 여학생이 자신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너무 높은 데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심적인 부담을 이기지 못해 고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이 방송을 본 저는 놀랍고 두려웠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높은 기대가 이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또한 아들이 언젠가 그 여학생처럼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순간 저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막막했습니다. 그동안 아들을 훌륭하게 길러 인재로 만드는 것이 제 삶의 목표였고 원동력이었는데, 이제는 아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대해야 할지 정말로 몰랐습니다!
아들아, 이제는 계획된 틀에서 너를 놓아주마
고통스럽고 막막해 할 때, 언니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변변찮은 능력 탓에 이번 생에서는 더 이상 성공의 기회와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자신이 못 이룬 꿈과 희망을 자녀에게 맡기고 대신 이뤄 주기를 바란다. 자녀가 가문을 빛내거나 높은 위치에 오르기를 바라고, 큰 부자나 유명인이 되기를 바란다. 자녀가 출세만 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여긴다. 사람의 계획과 생각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한들 부모가 자녀의 수, 외모, 능력 등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 더군다나 자녀의 운명은 부모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자신의 운명도 어쩌지 못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바꾸려 들고, 자신의 운명에서 한 발짝도 옴짝달싹 못 하면서 자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하냐?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으냐?』
하나님의 말씀은 구구절절 제 속의 생각들을 들추어내셨습니다. 그동안 제가 출세하지 못하고 가문을 빛내려는 꿈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인해 모든 희망을 아들에게 걸지 않았습니까? 아들이 옹알옹알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글자를 가르쳤고, 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또 많은 학원에 등록시켜 주었으며, 나중에 아들을 인재로 만들기 위해 심지어 직장을 사직하면서까지 아들이 공부하도록 재촉하고, 노는 시간마저 빼앗지 않았습니까?
저는 말끝마다 아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천진난만하고 근심 걱정 없이 자라야 할 아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훈련하게 한 것입니다. 아들을 인재로 키우지도 못했고 오히려 성격이 괴팍해져 저와 말조차 하기 싫어했으며, 심지어 저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차서 저를 마귀할멈 같다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모든 것은 다 하찮은 것이고 오로지 학문만이 고귀한 것이다.’ ‘지식은 운명을 바꾼다.’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 ‘가문을 빛냄’이라는 사탄의 철학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사탄 철학에 농락당한 아이는 힘든 생활을 했고 저 역시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사람의 운명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입니까? 자신의 운명도 장악할 수 없으면서 아들의 운명을 장악하고 통제하려 했으니 그야말로 분수를 몰랐습니다. 저는 자식에 대한 부모들의 무리한 요구로 아이들이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고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기사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모들이 사탄의 독소에 따라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한결같이 부모의 교육 방식에 따라 공부하고 살아갈 것을 강요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지 않아 결국 아이들은 과중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함으로써 그런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아, 이제는 계획된 틀에서 너를 놓아주마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인생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생활 방식과 인생관, 추구, 소망과 꿈을 정리하고 분석한 다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 있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배치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이전에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아왔던 저 자신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는 줄곧 가문을 빛내고 출세하는 것만을 추구했지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참된 순종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결국 저의 희생은 당연히 받아야 할 보답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들과 저의 사이만 낯설어졌고 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사탄의 생존 법칙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아들이 나중에 어떤 운명일지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결정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이 배정해 놓으셨습니다.
그 후 저는 더는 아들에게 학원에 가서 피아노 연습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아들 뜻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무엇을 배우고 싶다거나 혹은 어떤 것에 흥미가 있으면 저는 격려하고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은 서서히 밝아졌고 이전처럼 더는 제멋대로 억지를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와의 관계도 점점 더 좋아졌고, 어떤 고민이 있거나 학교에서 즐거운 일, 불쾌한 일이 있으면 집으로 돌아와 항상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아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았지만, 성적은 오히려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아서 시험을 칠 때마다 반 석차가 상위권이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자랑스럽게 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학교 친구들이 나를 아주 많이 부러워해. 자기들 엄마도, 우리 엄마 같았으면 좋겠다고 다들 말을 해.” 저는 왜 그런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우리 반 친구들은 날마다 학원에 가는데, 자유 시간이 전혀 없고 재미도 없다고 말을 해. 하지만 난 오히려 내 흥미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서 매일 자유롭고 유쾌하게 지낼 수 있지. 내 생각에는 엄마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 바뀐 것 같아. 이전에는 항상 엄마 스케줄에 따라야 했고 엄마 뜻대로 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를 냈는데, 지금은 무엇이나 나와 상의하고 내 생각을 물어보잖아. 나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데 이제야 내 엄마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말에 저는 너무 감동되어 “ 엄마가 더는 너에게 이것저것을 배우라고 강요하지 않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켜 주었기 때문이야.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려야 해. 우리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찾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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