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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성적표를 기다리던 나에게 전해온 한장의 메모지

리화자 2019. 4. 5. 08:49


딸의 성적표를 기다리던 나에게 전해온 한장의 메모지



딸이 남긴 메모지


‘엄마, 잘 있어. 나 떠나. 다시는 엄마 안 볼래. 엄마가 날 이렇게 등 떠민 거야, 엄마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었지? 그런데 알아? 엄마가 나 매일 공부시켜주고, 아침 점심 저녁 맛있는 밥을 해 주었잖아, 그래서 난 정말 꿈속에서도 좋은 성적 받아서 엄마한테 보답하고 싶었어. 그런데 자꾸 마음이 조급하니까 더 스트레스 받고, 그래서 항상 위가 쓰리고 잠도 못 자고 어떨 때는 악몽도 꿨어.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알아? 그건 선생님이 성적표를 발표하는 날이야. 학교 수업 마쳐도 집에 안 가고 싶었어. 하늘을 나는 작은 새도 다들 저렇게 자유롭고 즐거운데, 나는 왜 저 작은 새보다도 못 할까? 난 이렇게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엄마, 엄마는 내 몸을 휘감고 있는 그물 같아. 내가 가는 데마다 내 몸에 달라붙어 나의 즐거운 어린 시절을 빼앗아 가버렸어. 나는 엄마의 그 그물을 영원히 벗어나고 싶어. 다시는 그 숨 막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엄마, 엄마가 미워, 미워, 미워⋯.’


이건 딸이 남긴 메모지 내용입니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두렵고 떨립니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석자나 되는 얼음은 하루 추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딸의 가출은 절대 일시적인 생각에 즉흥적으로 생긴 게 아닙니다. 그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가슴 쓰린 과거


나에게는 단 하나 뿐인 딸입니다. 그 딸이 언젠가는 대학에 입학하고, 또 어른이 된 후에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를 바랐습니다. 딸이 공부의 기초를 잘 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치원 선택할 때에도 내가 먼저 가서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보고, 몇몇 다른 유치원과 비교를 해 본 후,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 제일 좋은 유치원을 딸에게 선택해주었습니다.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성적이 반에서 늘 10등안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반에서 5등 안에는 들어야 훌륭한 학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공부해도 5등 안에 못 들꺼면 공부를 해서 뭐 해?”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딸은 뾰로통해서 말했습니다. “다른 애들과 비교 좀 하지 마. 걔네들은 100점 받지만, 나는 99점도 안 된다고. 엄마 요구가 너무 지나친 거라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옛말에 ‘엄격한 스승이 훌륭한 제자를 만든다’라고 하잖아. 내가 지금 너한테 성적 잘 받으라고 하지 않으면, 나중에 네가 어떻게 남들보다 훌륭하게 될 수 있겠어?” 나의 이런 말에, 딸은 더 이상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기분은 언짢아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딸이 중학교 1학년이 되자 공부에 대한 경쟁이 더 치열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도 없고, 나중에 명문 대학에 들어갈 기회조차 잃게 될 거야.’ 그래서 나는 저녁 일을 포기하고, 매일 저녁 식사 후에 딸에게 국어, 수학, 영어 등 각종 문제지를 가르쳤습니다. 한 문제 한 문제씩 끈기 있게 가르치면서, 딸이 TV를 보거나 놀러 나가는 것도 통제하고, 시간을 다그쳐가며 공부를 시켰습니다. 딸은 싫어했지만 내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계속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한 것도 잠시뿐,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어 수시로 기지개를 켜거나, 물을 마시러 가거나, 아무 말도 없이 화장실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오면 앉지도 않고 서서 내게 인상을 쓰며 말했습니다. “엄마, 지금 도대체 몇 시야? 내일 하면 안 돼? 빨리 자고 싶어.” 그러면 나는 황급하게 말했습니다. “잠은 무슨 잠?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 같은데. 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내가 가르쳐 줘야 되고, 내일은 또 내일 풀어야 할 문제가 있잖아. 빨리 문제를 풀어야지, 국어, 수학, 영어, 다 합치면 문제가 이렇게나 많은데, 언제 다 가르칠 수 있겠어?” 딸은 곁에서 나의 근심스러운 모습을 보고는 감히 잠을 자러 가지 못하고, 그저 억지로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매일 저녁 우리는 전쟁터에 나간 것처럼 1분 1초를 치열하게 싸웠고, 심지어 새벽 1시까지도 공부를 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딸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치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모르자,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도대체 몇 번을 연습한 거야, 그런데 아직도 모르겠어?” 딸도 짜증이 나서 나에게 대들며 소리쳤습니다. “이제 그만 가르쳐, 난 몰라, 이 문제는 보기만 해도 토할 거 같아. 원래는 풀 줄 아는 문제였는데, 엄마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가르쳐주니 오히려 더 모르겠어.” 딸의 이 말에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딸에게 너무 무리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되었습니다. 평소대로라면 10시가 넘으면 자야 되는데, 지금은 매일 새벽이 되어야 잠자리에 드니, 혹시 성장 과정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딸아이의 피곤한 모습을 보면 나도 마음이 아파서 늘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딸이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데 언제가 되어야 끝이 보일까?



딸의 성적표를 기다리던 나에게 전해온 한장의 메모지



나는 딸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언가가 가로막혀있는 것처럼,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딸은 내 눈을 바라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명랑했던 아이가 점점 시들시들해져서 말도 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속담에 “고생을 많이 해봐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겠습니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저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의 가출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딸의 영어성적이 걱정돼 딸에게 급하게 물었습니다. “영어 시험 잘 봤어?”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눈빛과 표정에서 성적이 별로 안 좋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딸에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시험 잘 못 봤으니 더 열심히 가르쳐야겠네, 연습 문제를 그렇게 많이 풀어봤는데 왜 틀리는 거야? 우리가 평소에 연습했던 것보다 쉬운 문제들인데, 왜 그렇게 대충대충이야? 머리는 쓰라고 달려있는 거 아니야? 엄마는 이 나이에도 기억할 수 있는데, 너처럼 이렇게 어린 녀석이 엄마보다 기억력이 더 좋아야 되는 거 아니니?”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입만 삐죽거렸습니다. 나는 더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시험을 망쳤으니 어디 놀러 갈 생각은 하지 마.” 내 말에 딸은 억울해하며 울면서 자기의 방으로 뛰어들어가 ‘쾅’ 하고 방문을 닫았습니다.


영어 시험 성적표를 받는 날 점심 무렵, 나는 집에서 초조하게 딸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너무 걱정이 되어 딸을 찾으러 급하게 학교로 달려갔더니, 딸의 짝꿍이 나에게 메모지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엄마, 잘 있어. 나 떠나. 다시는 엄마 안 볼래. 엄마가 날 이렇게 등 떠민 거야, 엄마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었지?⋯. 딸의 메모지를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나는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나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바로 쓰러졌습니다. 귓가에는 딸의 메모지 속 한마디 말이 줄곧 맴돌았습니다. ‘엄마가 미워. 미워, 미워⋯.’ 내가 그렇게 힘들게 노력했던 결과가 딸의 원망과 가출로 되돌아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 모든 게 다 딸이 잘 되라고 그런 거 아닌가? 왜 이렇게 되어버렸지? 내가 정말 잘 못했단 말인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일어난 일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전 정말 이런 충격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저와 제 딸을 구해주시옵소서!’ 나는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왜 그런 것을 내 손에 맡기지 않느냐?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냐?』 ‘맞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잖아, 딸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지.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딸은 안전할 거야. 왜 내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거지? 하나님이 나의 방패요 의지잖아.’ 그제서야 나는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날이 막 어두워지려고 할 때, 내 동생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오들오들 떨고 있는 딸을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딸을 보자마자 나는 달려가서 꼬옥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돌아왔으니 됐어, 이제 됐어, 엄마가 다시는 억지로 공부시키지 않을게!” 그 후, 나는 딸에게 말로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딸의 장래에 대해 초조해하고 걱정하였습니다.


문제의 근원을 찾다


어느 날 집회에서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이 나에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나는 우리의 장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으며,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 재산을 얼마나 소유하게 될지 등등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적절히 배치해 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하고, 늘 자신의 노력을 통해 딸의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하려고 했으며, 나의 뜻에 따라 딸의 장래를 계획하고 아이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딸에게 이렇게 많은 통제와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한 것이고, 너무나도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타락된 후, 모두 사탄의 생존 법칙에 의거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진정한 고통을 겪어봐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은 하찮은 것이다. 오로지 학문만이 고귀한 것이다.’ 등등, 어려서 부터 사탄의 이러한 사상과 관점의 훈육을 받아와서, 학문을 많이 닦으면 멋진 미래를 창조할 수 있고, 의식주 걱정 없이,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지만, 지식과 학문이 부족하면,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딸의 성장 과정 중에,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사회에서 발붙일 수 있도록, 나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딸에게 엄하게 교육을 하면서도, 정작 아이와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화는 별로 하지 않았고, 아이의 진실한 생각과 요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말끝마다 공부 공부하면서, 아이의 자유를 박탈하였습니다. 또 아이에게 매일매일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였으며, 고압적인 교육으로 모녀관계가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으며, 결국에는 딸이 ‘메모지’를 남기고 가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일가족이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으니, 이것은 정말 사탄의 농간에 의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만약 또다시 사탄의 철학에 따라 딸을 대한다면, 또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지게 될지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만약 사탄의 사상 관점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저 사탄에게 괴롭힘과 우롱을 당하면서, 더더욱 고통스러워지게 될 뿐이라는 걸 나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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