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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
소돔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 흔적도 없이 멸망당하다 소돔 성 사람들은 두 사자를 보았을 때, 그들이 거기에 온 이유를 묻는 자가 없었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러 왔는지도 묻는 자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무리 지어 와서 다짜고짜 미친개와 같이, 악한 이리와 같이 그 두 종을 잡으려 하였다. 당시에 일어난 일을 하나님은 다 보고 있지 않았겠느냐? 사람의 그런 행위와 그런 일을 대함에 있어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은 이 성을 멸하리라 굳게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는 주저하지 않았으며 기다리지 않았고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의 날이 오면 그는 하고자 했던 일을 그대로 행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19장 24절과 25절에서 말씀한바,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정의의 힘과 긍정적 사물의 보장이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생각하고 행한 이런 사례들을 알아감을 통해 너는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이 방면의 성품을 사람이 얼마를 인식할 수 있든지, 어쨌든 모두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한 방면의 성품이다.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음과 위엄은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실질이고,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성품이다. 하나님이 노를 발하는 원칙은 하나님 자신만이 갖고 있는 신분과 지위를 대표하는데, 말할 필요 없이 그것도 역시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의 실질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실질이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도 않고, 지리적 위치가 바뀐다고 ..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다 [하나님]------(창 3:20~21)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세 번째 단락을 보자. 여기서 아담이 하와에게 지어 준 이름은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냐? 이는 아담이 지음받은 후, 생각이 있는 사람이고 또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담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또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에 관해 지금 거론하지 않겠다. 그런 것은 내가 말하려고 하는 세 번째 단락의 중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단락의 중점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는 이 구절..
하나님의 진노는 감춰져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지하고 우매한 전 인류를 주로 긍휼과 관용 위주로 대하고, 하나님의 진노는 대부분의 시간과 일에서 모두 감추어지고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가 공표되는 것을 보기 매우 어렵고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람을 관용하고 사람을 용서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한 부분 사역과 마지막 한 절차가 사람에게 임했을 때 즉, 하나님의 마지막 한 번의 긍휼과 마지막 한 번의 경고가 사람에게 임했을 때에도, 사람이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 대항하고 전혀 회개치 않고 돌이키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