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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파가 형성된 것입니다.그렇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누가 알고 있습니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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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파가 형성된 것입니다.그렇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누가 알고 있습니까?

리화자 2019. 4. 26. 09:33

당신은 여러 교단과 교파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저는 어릴 적에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예전에, 인도에 한 왕이 있었는데 그는 많은 코끼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왕이 코끼리의 등에 타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길가에서 쉬고 있는 한 무리의 소경들을 보고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코끼리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 소경들에게 함께 만져 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소경이 손을 내미니 마침 코끼리의 코가 만져졌습니다. 그러자 그 소경은 “아! 이제 보니 코끼리는 구불구불한 끌채(수레의 양쪽에 대는 긴 채)처럼 생겼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단단한 상아를 만지고는 바로 “아니야! 코끼리는 쌀을 찧고 옷을 두드릴 때 쓰는 홍두깨(다듬잇방망이) 같아”라고 반박했습니다. 세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귀를 만진 후 “아니야! 코끼리는 잡동사니를 담는 삼태기처럼 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네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머리를 만지고는 “틀렸어! 코끼리는 향을 피우는 세발 향로 같구만”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섯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등을 만지고는 “당신들은 다 틀렸어! 코끼리는 울퉁불퉁한 작은 언덕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여섯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배를 만지고 나서 “사실 코끼리는 뭐 별거 아니네, 두텁고 넓은 벽처럼 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일곱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넓적다리를 만지고는 “아니야! 코끼리는 고목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여덟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어깨를 만지고는 “코끼리는 기둥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아홉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발을 만지고 “아니야! 아니야! 코끼리는 움푹 파인 돌절구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장님은 코끼리의 꼬리를 만지고는 “당신들의 말은 다 틀렸어, 코끼리는 밧줄로 엮은 길다란 채찍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장님들은 자신이 만진 것이 맞고 다른 사람의 말은 틀렸다고 하면서 논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


소경들이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국왕은 웃으면서 “여러분! 여러분은 크게 틀렸습니다! 여러분이 만진 것은 코끼리 신체의 일부분입니다. 코끼리는 채찍도 돌절구도 아니고, 고목도 담장도 아니며, 작은 언덕도 향로도 아닙니다 …… 코끼리는 그저 코끼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오늘날 주님을 믿고 있는 여러 교단과 교파가 연상되었습니다. 여러 교파의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믿는 것이 옳고 다른 사람이 믿는 것은 틀린 것이라며 의견이 분분한데, 각자가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신청의(以信稱義)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는 칭함을 받았으므로 자신들이 믿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생명파는 성경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으므로 자신들이 거듭남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파는 성경에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었으므로 자신들이 그 이름을 지키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합니다. 찬미파는 성경에 다윗이 북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을 중시하는데, 그렇게 믿어야만 하나님께 칭찬받는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안식일파는 여호와 하나님이 십계명을 반포하여 사람들에게 반드시 안식일을 지킬 것을 요구하셨으므로, 오직 안식일을 지켜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각 교파 사람들이 다 자신들이 믿는 교파의 관점만 주장하는 것을 보면, 바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사람이 믿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이런 관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누가 알고 있을까요?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1장 10절과 12절 말씀을 봅시다. “형제들아 ……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 크리스천들 가운데 서로 다른 믿음의 파(派)가 생기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바울에 속하고, 아볼로가 전한 것은 아볼로에 속하고, 게바가 전한 것은 게바에게 속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의 사도들은 당시의 신도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분열되면 안되며, 그렇게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들인 것이지 사람의 구원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에서 사람을 믿는 데로 나아가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주님의 몸은 오직 하나인데 그렇게 한다면 주님의 몸을 갈라놓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주님의 뜻에 맞을까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예수님의 복음이 여러 세대를 거치며 지금까지 전해져 와서, 처음에 바울에게 속하고, 아볼로에게 속하고, 게바에게 속하던 것이 이제는 이미 2,000개(중국 기준)가 넘는 교파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몇천 년 동안 하나님을 믿어 온 과정은 뜻밖에도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관념 속에서 살면서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고, 더군다나 저마다 이치를 말하면서 자신의 것이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인식은 완전치 못합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수많은 교파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누가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여러 교단과 교파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신앙이고, 백 사람이면 백 가지 신앙이 있다. 사람에게 이런 신앙이 있는 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의 실제적인 역사를 보지 못한 연고이며, 모두 사람이 귀로 듣기만 하였지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사람이 전설을 듣고 이야기를 들었으나 하나님 역사의 사실에 대한 인식을 매우 적게 들은 까닭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한해 믿은 사람도 관념에서 신앙하고,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한평생 믿은 사람도 역시 관념에서 신앙 한다. 사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 신앙에서 언제나 벗어 나지도 못한다. 사람은 또 자기가 이미 낡은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진입하였다고 여기는데, 어찌 하나님의 진실한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모두 관념이고 소문임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각 교파가 생겨난 주원인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야기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저 막연한 하나님만 믿을 뿐,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만물을 관리하고 공급하는 등등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비록 서로 다른 교리를 지키지만 어떤 교파를 막론하고 모두가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만 자대(自大)하여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더욱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화비하는 것으로 주님과 거래하여 맞바꾸려고 하고 천국에 들어가 상을 받고 싶어합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날마다 죄짓고 회개하는 거듭되는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주님이 오시면 들림받아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혐오하는지는 지금까지 모르고, 사람들 모두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파가 주님께 가장 인정받는 곳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로, 성경의 글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이끄심 아래에서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믿어도 그 믿음이 실제적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그저 바닷물 한 방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맹목적으로 사람을 우러러보고 따랐기 때문에 지금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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