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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떠나면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논법이 맞습니까? 본문

하나님의 약속 큐티/신앙 문답

성경을 떠나면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논법이 맞습니까?

리화자 2019. 3. 10. 15:05

 성경을 떠나면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논법이 맞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유대의 그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써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오늘날의 예수와 어떻게 합할 것인가를 찾고 구하지 않고 매 구절의 율법을 진지하게 대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들은 결국에는 예수가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죄명으로 본래 무죄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이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들은 ‘경문’의 한 글자 한 구절에만 유심하였을 뿐, 나의 뜻과 나의 역사 절차와 역사 방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사수하는 사람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이다. 좀 더 투철하게 말하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노예들이다. 성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성경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하여, 성경의 명망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은 결국 인자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다만 성경의 편을 들기 위한 것이었고, 다만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의 한 글자 한 구절의 지위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앞길을 망칠지언정, 속죄제를 얻지 못할지언정, 경문의 규정에 맞지 않는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 하였다.


……


오늘날의 사람은 또 어떠한가? 천당에 가기 위하여, 은혜를 받기 위하여 사람은 모두 이미 와서 진리를 내놓는 그리스도를 차라리 인간 세상에서 몰아내고자 하고, 성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사람은 모두 차라리 진리의 도래를 전부 말살해버리고자 하며, 성경의 영원한 존재를 수호하기 위하여 사람은 모두 차라리 두 번째로 육신으로 돌아온 그리스도를 재차 십자가에 못 박고자 한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악독하고 사람의 본성이 이렇게 나와 적대되는데, 또 어찌 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어도 사람은 나의 존재를 모르고, 나의 빛을 사람의 몸에 비출 때에도 사람은 여전히 나의 존재를 모르며, 나의 진노가 사람의 몸에 임할 때에 사람은 더욱더 나의 존재를 부인한다. 사람은 모두 글귀와 합하고 성경과 합하는 것을 찾고 구하지만 내 앞에 와서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모두 하늘 위의 나를 앙망하고 하늘 위의 나의 존재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지만 아무도 육신 중에 살고 있는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는 내가 그야말로 너무나 미소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글귀와 합하기만을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 막연한 하나님과 합하기만을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은 나의 눈에는 비천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죽은 글귀이고 숭배하는 것은 사람에게 거액의 재산을 베풀어줄 수 있는 하나님이며 숭배하는 것은 사람에게 지배받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이 나에게서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비천함은 그야말로 차마 말할 수가 없다. 나와 적이 되는 이 사람들, 나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이 사람들,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이 사람들, 나를 거역하는 이 사람들이 어찌 나와 합할 수 있겠는가?』


≪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해야 한다≫에서 발췌



성경을 떠나면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논법이 맞습니까?



『더 높은 도가 있는 이상, 하필 그 낮고 때가 지난 도를 연구할 필요가 있는가? 더 새로운 말씀과 더 새로운 사역이 있는 이상, 하필 아직도 낡은 역사 기록 속에서 살 필요가 있는가? 새로운 말씀이 너를 공급할 수 있으면, 이것이 새로운 사역임을 증명한다. 낡은 기록이 너를 배부르게 할 수 없고 너의 현시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없으면, 이것은 역사(歷史)이고 현시의 사역이 아님을 증명한다. 최고의 도가 바로 최신 사역이다. 새로운 사역이 있으니, 이전의 도가 아무리 높아도 다 사람이 회상하는 역사(歷史)로 되었고, 아무리 참고 가치가 있어도 옛 도이다. 비록 ‘성서’에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옛 도는 역사(歷史)이며, 비록 ‘성서’에 한 페이지도 기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새 도는 현실이다. 이 도가 너를 구원할 수 있고, 이 도가 너를 변화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예수 시대에, 예수는 그때 성령이 그의 몸에 하는 사역에 따라 그 유대인들을 인솔하였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인솔하였다. 그가 한 것은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 그의 사역에 따라 말씀하였다. 그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하였든, 성경에서 길을 찾는 것으로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솔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하기 시작하자 회개의 도를 전하였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그렇게 많은 예언에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는 성경에 근거하여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내었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그는 여태껏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하지 않았다.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그의 이적은 율법시대에 아무도 나타낼 수 없었고 그의 사역, 그의 교훈, 그의 권세도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다만 그의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을 뿐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써 그를 정죄하고 심지어 구약 성경으로써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지만 그의 사역은 오히려 성경 구약을 초과하였다. 만일 이렇지 않았다면 사람이 또 어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 그의 교훈과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능력이 구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가 한 사역은 모두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일부러 구약 성경을 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그의 직분을 하여 그의 새로운 사역을 그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며, 그가 역사한 것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역사하는 데는 성경의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다만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구약의 예언을 해석하지 않았고 구약 율법시대의 말씀대로 사역하지도 않았다. 구약에 어떻게 말하였든, 그의 것과 맞든 그의 것과 맞지 않든, 그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써 그를 정죄하였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그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하든, 그의 사역을 어떻게 정죄하든, 그는 줄곧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을 뿐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가 역사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었고 또한 성경의 기록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많이 있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착오가 아닌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하는가? 도대체 성경이 큰가 아니면 하나님이 큰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함에 있어서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하는가? 설마 하나님 자신은 성경을 벗어날 어떠한 권리도 없단 말인가? 하나님이 성경을 떠나서 따로 역사할 수 없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는가? 만일 그가 안식일에 따라, 구약의 그런 계명에 따라 실행한다고 하면, 그는 무엇 때문에 와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나 발을 씻고 머리에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는가? 이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닌가? 그가 구약대로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규례들을 타파하였는가? 하나님이 먼저 있었는지 아니면 성경이 먼저 있었는지를 너는 알아야 한다! 그가 안식일의 주인일 수 있으면 성경의 주인일 수는 없는가?』


≪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네가 율법시대의 사역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여호와의 도를 준행하였는가를 보려면, 너는 구약 성경을 보아야 한다. 네가 은혜시대의 사역을 이해하려면, 신약 성경을 보아라. 그러면 말세에 하는 사역에 대해서는 네가 어떻게 보는가? 반드시 오늘의 하나님의 인솔을 받아들여야 하고 오늘의 역사에 진입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새로운 사역이고 성경에 또한 아무도 앞당겨 ‘기록’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되어 따로 중국에서 또 얼마간의 선민을 택하였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 몸에 역사하여, 그의 땅에서의 사역을 이어서 하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잇는다. 오늘의 사역은 이전 사람이 걸은 적이 없던 길이고, 역시 아무도 보지 못하였던 도이며, 여태껏 하지 않았던 사역이다. 즉 하나님의 땅에서의 최신 사역이다. 그러므로 하지 않았던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현재는 현재이고 아직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땅에서 이스라엘 이외에서 또 더 크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는데, 이미 이스라엘의 범위를 벗어났고 선지자의 예언도 초과하였음을 모르며, 예언 이외의 신기(新奇)한 사역이고 역시 이스라엘 이외에서의 더욱 새로운 사역이며 사람이 꿰뚫어보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사역임을 모른다. 이러한 사역이 성경에 어찌 명확한 기록이 있을 수 있겠는가? 누가 오늘의 사역을 앞당겨 조금도 빠짐없이 다 기록해놓을 수 있겠는가? 누가 관례를 타파한 이 더 크고 더 지혜로운 사역을 오래되어 곰팡이 핀 그 책에 기록해놓을 수 있겠는가? 현시의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오늘의 새 길을 걸으려면, 너는 성경에서 나와 성경에 기록된 예언서나 역사서의 범위를 초월해야 한다. 이래야만 새로운 길을 잘 걸을 수 있고 새로운 경지에, 새로운 역사에 진입할 수 있다. 현재 무엇 때문에 너더러 성경을 보지 말라고 하는지, 무엇 때문에 성경 이외에 또 다른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성경에서 더 새롭고 더 세밀한 실행을 찾지 않고 성경 이외에 또 더 큰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를 너는 깨달아야 한다. 이런 것은 모두 너희들이 깨달아야 할 바이다.』


≪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출처 : 하나님의 약속 큐티


성경을 떠나면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논법이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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