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
산상 수훈 예수의 비유 계명 본문
산상 수훈 예수의 비유 계명
1.산상 수훈
1) 복을 말하다 (마 5:3~12)
2) 빛과 소금 (마 5:13~16)
3) 율법을 말하다 (마 5:17~20)
4) 노하는 것을 말하다 (마 5:21~26)
5) 간음을 말하다 (마 5:27~30)
6) 이혼을 말하다 (마 5:31~32)
7) 맹세를 말하다 (마 5:33~37)
8) 보복을 말하다 (마 5:38~42)
9) 원수를 사랑하는 것을 말하다 (마 5:43~48)
10) 구제를 말하다 (마 6:1~4)
11) 기도를 말하다 (마 6:5~8)
2.예수의 비유
1) 씨 뿌리는 비유 (마 13:1~9)
2) 가라지 비유 (마 13:24~30)
3) 겨자씨 비유 (마 13:31~32)
4) 누룩 비유 (마 13:33)
5) 가라지 비유를 설명 (마 13:36~43)
6) 보화를 감추는 비유 (마 13:44)
7) 진주를 발견하는 비유 (마 13:45~46)
8) 그물을 치는 비유 (마 13:47~50)
3.계명
(마 22:37~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우선 ‘산상 수훈’에 포함된 조목부터 보자. 이런 내용은 다 어떤 것에 관련되느냐? 확실히 말해서, 이런 내용은 율법시대의 규례 속에 있는 그런 내용들보다 더욱 높고 더욱 구체적이며, 사람의 생활에 더욱 가까운 것이다. 지금 말로 하면, 사람의 실제적인 실행에 더욱 가깝다는 것이다.
다음의 구체적 내용을 읽어 보자. ‘복을 말하다’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율법을 말하다’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노하는 것을 말하다’에 대해 어떤 정의를 가지고 있는지, 간음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혼을 대함에 있어서 어떤 말들과 규정이 있는지, 어떤 사람이 이혼할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이 이혼할 수 없는지, 맹세를 말하고, 보복을 말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 구제하는 것 등등 이런 내용은 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여러 방면의 실행에 관련된다. 이런 실행들을 지금에 가져와도 어떤 것은 계속 적용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람을 향한 지금의 요구보다는 좀 얕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접촉하게 되는 기초적인 것에 가까운 진리이다. 예수는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사람의 생명 성정 방면에 관련된 사역에 착수했지만, 그런 사역은 율법의 기초상에서 하게 된 일부분 사역이다. 그런 방면의 규정과 논법은 진리와 관련이 있을까? 당연히 관련이 있다! 이전의 규례든 원칙이든 아니면 은혜시대의 그런 수훈이든, 다 하나님의 성품이나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관련이 있는데, 다 진리와 관련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발표하든, 어떤 방식으로 발표하든, 어떤 언어를 통해 발표하든, 그 기초, 근원, 출발점은 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원칙으로 하여 발표되는 것이다. 이것은 조금도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런 말씀들이 지금에 와 보면 좀 얕기는 하지만 진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은혜시대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고 생명 성정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없어서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수훈 중에서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고 할 수 있느냐? 없다! 어느 한 가지든 다 진리이다. 왜냐하면 어느 한 가지든 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고, 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사람 됨의 원칙과 범위이며, 다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때 사람의 생명 정도(程度)는 겨우 그런 것만 받아들이고, 겨우 그런 것만 깨달을 수 있었을 뿐이다. 사람의 죄가 아직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는 그런 말씀들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범위에서 그렇게 얕은 교훈으로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땅히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마땅히 어떤 원칙과 범위에서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케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은 모두 그때 사람들의 분량에 근거해 결정한 것이다. 율법 아래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있어, 그런 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이미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가 가르쳐 준 범위도 그런 범위일 수밖에 없었다.
산상 수훈 예수의 비유 계명
계속해서 ‘예수의 비유’ 중에 있는 조목들의 내용을 보자.
“첫 번째, 씨 뿌리는 비유이다. 이 비유는 매우 뜻깊다. 씨 뿌리는 것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일이다. 두 번째, 가라지의 비유이다. 무엇이 가라지인지는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이나 어른이라면 다 알 것이다. 세 번째, 겨자씨의 비유이다. 너희는 겨자가 뭔지 다 알겠지? 혹시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성경을 찾아보면 된다. 네 번째, 누룩의 비유이다. 많은 사람들은 누룩이 발효 식품에 쓰이고, 사람의 일상생활에 쓰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음의 여섯 번째, 보화를 감추는 비유, 일곱 번째, 진주를 찾는 비유, 여덟 번째, 그물을 치는 비유, 그 모든 비유의 소재들은 다 사람의 생활에서 찾은 것이고, 다 사람의 현실 생활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런 비유들은 사람에게 어떤 그림을 떠올리게 하느냐? 그 그림은 하나님이 정상 사람이 되어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생활상의 용어, 인성의 용어로 사람과 소통하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사람의 각종 생활 방식을 체험하고 목격한 후, 그런 생활 체험은 다 신성의 언어를 인성의 언어로 전환하는 교재(敎材)가 되었다. 또한 생활 속에서 보고 들은 것들도 인자의 인성 경험을 풍부하게 한 것은 물론이다. 예수가 사람에게 진리를 좀 깨닫게 해 주려고 할 때,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좀 깨닫게 해 주려고 할 때, 위의 여러 가지 비유와 같은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한 요구를 알려 줄 수 있었다. 그런 비유는 모두 사람의 생활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 사람의 생활과 어긋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예수는 사람과 함께 생활할 때, 농부들이 씨 뿌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고, 무엇이 가라지인지도 알고 무엇이 누룩인지도 알고 있었다. 또한 예수는 인류가 보화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보화를 감추는 비유도 하고, 보화를 찾는 비유도 해 주었다. 예수는 생활 속에서 항상 볼 수 있었던, 어부들이 그물을 치는 등등 인류의 생활과 관련되는 그런 행위들을 친히 보았고, 동시에 그런 생활을 체험하기도 했었다. 예수는 모든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하루 세 끼와 일상에서 일하고 쉬는 것을 체험하고 평범한 사람의 생활을 친히 겪으면서 다른 사람의 생활도 목격하였다. 예수가 그 모든 것을 목격하고 친히 겪을 때, 어떻게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인지, 어떻게 자신이 더 자유롭고 더 편하게 살 것인지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그런 진실한 생활을 체험하는 동시에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쓰라림을 보았고, 사탄의 패괴 아래에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죄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의 쓰라림과 가련함과 비참함도 보았다. 예수는 인류의 생활을 체험하는 동시에, 패괴 가운데서 생활하는 인류가 너무나도 의지할 데 없다는 것도 몸소 느끼게 되었고 또한 죄 가운데서 생활하는 인류가 사탄에게 시달리고 죄악에 시달려 목표와 방향이 없는 참상도 느끼게 되었다. 예수가 그런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신성에서 본 것일까 아니면 인성에서 본 것일까? 예수의 인성은 존재하고 살아 있는 것이어서 그 모든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예수의 실질, 곧 예수의 신성도 그것을 당연히 보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 자체―예수, 그 사람이 보게 된 것이다. 예수가 본 그 모든 것은 자신에게 그 당시에 성육신이 담당하는 사역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다. 예수는 그때에 성육신이 담당할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알고 있었고, 자신에게 임하는 고통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고 있었지만, 죄 가운데 있는 인류의 무기력함을 보게 되었을 때, 인류가 율법 아래에서 가련하게 살면서 힘없이 몸부림치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예수의 마음은 더욱더 아팠다. 그리하여 예수는 더욱더 절박하게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려고 하였다. 예수는 마음속으로 어떤 곤경에 직면하게 되든, 앞으로 어떤 고통을 당하게 되든, 죄 가운데서 살고 있는 사람을 구속해야겠다고 더욱 굳게 생각하였다. 그 과정에서, 예수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이 어떤 것인지, 담당해야 할 부탁이 어떤 것인지 더욱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는 자신이 담당할 사역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완성하려고 했다. 곧, 인류가 더 이상 죄 가운데서 살지 않도록, 그와 동시에 하나님도 속죄제로 말미암아 사람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 그에 따라 인류를 구원하는 진일보의 사역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사람의 모든 죄를 담당하고 인류를 대신해 속죄제가 되는 일을 완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마음속으로 기꺼이 인류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 자신을 희생하려고 했고, 속죄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진심으로 바랐을 뿐만 아니라 일각도 지체하지 않고 그 사역을 완성하려고 했었다. 심지어 예수는 인류 생활의 참상을 보았을 때, 되도록 빨리 일분일초도 지체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려고 했었다. 예수는 자신에게 그런 절박한 마음이 있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 것인지는 고려하지 않고, 더 이상 자신이 얼마나 큰 굴욕을 참아야 하는지도 고려하지 않았다. 예수의 마음속 신념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즉, 자신을 바치기만 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제가 되기만 하면,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고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전개할 수 있으며, 죄 가운데 있는 인류의 생활과 생존 상태가 이제 곧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수의 신념과 예수가 하고자 마음을 굳힌 일은 모두 인류를 구원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예수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즉,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여 다음 단계 사역을 순조롭게 전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당시 예수의 마음이었다.”
산상 수훈 예수의 비유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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