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은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여 인류에게 안정된 생존 환경을 주었다 본문

말씀

하나님은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여 인류에게 안정된 생존 환경을 주었다

리화자 2019. 1. 10. 15:41


하나님은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여 인류에게 안정된 생존 환경을 주었다


……이어서 우리가 나눌 다른 한 방면은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하는 방식이다. 그 방식은 ‘하나님이 만물을 만들고 어떻게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였는가’이다. 이 제목도 너희에게는 좀 크다.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는 이런 일을 사람이 할 수 있느냐? 사람은 할 수 없다. 사람은 파괴할 줄만 알고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그렇게 큰 권세도 없고, 그렇게 큰 능력도 없다.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는 목적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것 역시 인류의 생존과 크나큰 관계가 있다. 하나님이 하려는 매사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다 필수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생존을 유지하고 인류에게 좋은 생존 환경을 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들과 중요한 일들을 하여 인류의 생존을 유지시켜야 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균형되게 한다’는 이 말은 글자 그대로 보면 아주 두리뭉실한 화제이다. 그리고 우선은 사람에게 하나의 개념을 주는데, 만물은 여전히 하나님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균형되게 한다’의 글자 표면의 뜻은 무엇일까? 우선, ‘균형되게 한다’는 것은 균형을 잃지 않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들 천칭을 알고 있을 것이다. 천칭으로 물건의 무게를 잴 때, 물건을 한쪽 저울판에 놓고 다른 한쪽 저울판에는 분동을 놓는데, 그 분동의 수량이 나중에 그 물건의 무게를 결정한다. 그것을 균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균형되게 하려면 양쪽의 무게가 반드시 같아야 한다. 하나님이 만든 만물에는 많은 것이 있는데, 고정된 것, 움직이는 것, 살아 있는 것, 숨 쉬는 것, 그리고 숨 쉬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하나님은 많은 것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많은 것들이 서로 의존하고, 서로 부딪치며, 또 함께 숨 쉬며 생존하는 그런 관계를 갖게 하려면 쉬울까? 여기에는 틀림없이 원리가 있다. 비록 아주 복잡할지라도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연구하려면 상당히 복잡하다. 비록 네가 보기에는 그저 간단한 균형이란 단어이지만, 이 ‘균형’을 인류에게 연구하라고 하고 균형되게 하라고 한다면, 인류의 생물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나아가 역사(歷史)를 연구하는 정상급 인물까지 다 출동한다고 해도 최종에 연구한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연구한 결과는 바로 결과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너무나 기묘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은 영원히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들 때 만물들 사이에 원리를 제정해 주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생존 방식을 정해 주어 서로 제약하고, 서로 보충하고, 서로 공급하게 하였다. 그런 여러 가지 방식은 얼기설기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지,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머리와 배운 지식, 눈으로 보게 된 그런 현상으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는 원리를 입증하거나 연구하려 한다면, 그 원리를 발견하기 아주 어렵고, 그 결과 또한 발견하거나 얻기가 매우 힘들다. 그러므로 인류가 결과를 얻기는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머리와 지식으로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다스린다면, 인류는 그것들의 균형을 유지시키기 매우 어렵다. 인류는 만물이 생존하고 있는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그것들의 균형을 유지시켜야 할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만물을 관리하게 하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면, 인류는 아주 쉽게 그 균형을 파괴해 버릴 수 있다. 일단 파괴해 버리면 인류의 생존 환경이 파괴되는데, 인류의 생존 환경이 파괴되는 동시에 그에 따라 인류의 생존에 위기가 생기게 되고, 재난을 초래하게 된다. 인류가 재난 속에서 살고 있을 때면, 인류의 앞날이 어떻겠느냐? 추측하기 매우 어렵고, 예측할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지금의 세상이 바로 그런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할까? 우선, 지구상의 어떤 곳은 1년 내내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지만, 어떤 곳은 1년 내내 봄날처럼 따뜻하다. 얼음 한 조각도 볼 수 없고, 눈꽃도 볼 수 없으며, 겨울철이 없이 1년 사계절이 봄날 같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물의 관계를 균형되게 하는 방식인데, 전반적인 기후를 놓고 말한 것이다. 둘째, 이쪽 산을 보면 식물이 무성하고 여러 가지 식생이 땅을 뒤덮고 있고, 숲들로 우거져 있어 사람들이 그 속에서 다니면 태양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쪽은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 민둥산이 겹겹이 펼쳐져 있다. 겉으로 보면 다 토양이 쌓인 산(원문: 山體)이지만, 한쪽은 숲이 무성하고, 다른 한쪽은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다. 이것이 둘째이다. 셋째, 이편의 초원은 일망무제(一望無際)하고 온통 푸른 물결이지만, 저편의 사막은 끝이 보이지 않고 그 어떤 생물도 볼 수 없는데, 수원은 더더욱 볼 수 없고 모래바람만 휘몰아친다. 넷째, 이쪽은 바닷물로 뒤덮여 있고 영역이 넓지만, 저쪽은 오히려 샘물조차 보기 힘들다. 다섯째, 이쪽 땅에는 늘 보슬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며 공기가 촉촉하지만, 저쪽 땅은 늘 뜨거운 태양이 떠 있어 비 한 방울도 보기 어렵다. 여섯째, 이쪽은 고원이어서 공기가 희박하고 호흡하기 곤란하지만, 저쪽은 움푹한 늪지대여서 각종 철새들의 서식지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기후, 또는 서로 다른 지리 환경에 따른 기후나 환경이다. 즉, 하나님은 큰 환경에 있어 기후에서 지리 환경까지, 토양의 서로 다른 성분에서 수원의 다소까지, 인류의 기본적인 생존 환경을 균형되게 하여 사람이 생존하는 환경 속의 공기, 온도, 습도를 균형되게 하였다. 서로 다른 이런 지리 환경이 어우러져 있기에, 인류에게는 균형을 이루도록 정해진 공기가 있게 되었고, 균형을 이루도록 정해진 서로 다른 계절의 온도와 습도도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류가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런 생존 환경에서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은 큰 환경을 놓고 말한 것이다. 우선, 큰 환경에서 균형되게 하였는데, 서로 다른 지리 방향과 위치, 서로 다른 지리 방식, 그리고 서로 다른 기후의 변천으로 서로 제약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균형에 도달하고, 인류에게 필요한 그 균형에 도달하게 하였다. 이것은 큰 환경을 놓고 말한 것이다.

세부적인 것에서 말한다면, 예를 들어 식물들의 균형을 어떻게 이루게 할까? 즉, 어떻게 식물들을 균형된 생존 환경에서 계속 생존해 나가게 할까? 그것은 바로 여러 가지 식물의 수명과 그것들의 생장 속도와 번식 속도를 장악함으로써 식물의 생존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작은 풀은 봄에 싹이 트고 여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가 땅에 떨어지면 그 작은 풀은 죽는다. 그 씨앗은 이듬해에 싹이 트면서 계속하여 똑같은 법칙을 반복한다. 작은 풀의 수명은 아주 짧아 봄에서 가을까지만 살고 죽는다. 씨앗들이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그 과정은 단지 봄, 여름, 가을 시간대일 뿐이다. 여러 가지 나무들의 수명도 각기 다르고,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 주기도 서로 다르다. 어떤 나무는 수명이 30~50년이므로 30~50년이 되면 죽는다. 그러나 그것들의 열매가 땅에 떨어지면, 그 열매가 다시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서 다시 30~50년 자란다. 그것들은 그런 주기가 있다. 늙은 나무가 죽으면 어린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너는 숲 속의 나무들이 항상 자라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정상적인 순환과 정상적인 생사 과정이 있다. 어떤 나무는 천 년 이상 살 수 있고, 심지어 어떤 나무는 3천 년을 살 수 있는데, 그것들은 그런 식물인 것이다. 어떤 식물이든 그 수명이 얼마인지를 막론하고,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그것들의 수명, 그것들의 번식 능력과 번식 속도, 번식 수량과 빈도에 근거해 그런 식물들의 균형을 장악하여 그런 식물들, 즉 작은 풀에서 큰 나무까지 모두 끊임없이 생장하고 번성하면서 균형된 생태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지구상에서 네가 볼 수 있는 숲이든 나무든 아니면 작은 풀이든, 그것들은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들의 법칙에 따라 번식하고 생장하고 있는데,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고, 사람이 따로 어떤 일을 더 해 줄 필요도 없다. 그것들은 그런 균형이 있어야 자신의 생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에게도 자신에게 적합한 생존 환경이 있어야 그렇게 많은 숲과 풀밭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다. 그것들은 존재하면서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을 양육하고 있고, 숲과 초원에서 대대로 서식하는 각종 생물, 즉 날짐승과 길짐승, 곤충에서 각종 미생물까지 양육하고 있다.

하나님은 각종 동물들의 균형도 주관하고 있다. 어떻게 그 균형을 주관하고 있을까? 식물과 비슷하다. 역시 그들의 번식 능력, 번식 수량, 번식 빈도와 동물 중에서 맡은 그것들의 역할에 근거해 균형을 장악하고 그것들의 수량을 결정한다. 예를 들면,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먹는데, 만약 사자의 수량이 얼룩말의 수량을 초과한다면 얼룩말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느냐? 얼룩말은 멸종될 것이다. 그럼 얼룩말의 번식 수량이 사자보다 훨씬 적다면, 그것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느냐? 역시 멸종될 것이다. 그러므로 얼룩말의 수량은 반드시 사자의 수량을 훨씬 초과해야 한다. 왜냐하면 얼룩말은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자를 위해서도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얼룩말은 얼룩말들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또 사자의 먹잇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자의 번식 속도는 영원히 얼룩말을 초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자의 수량은 영원히 얼룩말을 초과할 수 없다. 그래야 사자의 먹이가 보장될 수 있다. 사자는 얼룩말의 천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늘 보게 되는 것은 그들이 오히려 같은 곳에서 유유히 서식하는 모습이다. 얼룩말은 사자가 잡아먹는다고 해서 수량이 줄어들거나 멸종되지 않는다. 사자도 자신의 ‘왕위’로 인해 가족 구성원을 증가시키지는 않는다. 그 속에 있는 균형은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여러 가지 동물들 사이에도 균형된 법칙을 제정하여 그들이 그런 균형을 맞추게 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얼룩말의 천적은 사자밖에 없느냐? 악어도 얼룩말을 잡아먹는다! 악어가 얼룩말을 잡아먹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악어가 얼룩말을 잡아먹는 장면도 아주 끔찍하다. 얼룩말은 보기에도 매우 무력한 동물로, 사자와 같은 흉악한 본성이 없다. 얼룩말은 사자와 같은 강적을 만나면 달아날 줄밖에 모르고 심지어 반항할 줄도 모르는데, 사자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면 사자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은 동물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너희는 그런 장면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 있었느냐? 얼룩말이 불쌍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느냐? 그럼 사자가 밉게 느껴지지 않았느냐? 얼룩말은 얼마나 멋지냐! 근데 사자는 호시탐탐 늘 얼룩말을 노려보고 있다. 하지만 얼룩말은 바보처럼 멀리 도망가지도 않는다. 얼룩말은 사자가 그늘 밑에서 더위를 식히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사자는 언제 얼룩말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 얼룩말은 속으로 알고 있느냐? 얼룩말은 알면서도 그 땅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기묘한 일이다. 그 기묘한 일에는 하나님의 정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주재가 있다. 네가 얼룩말이 불쌍하게 여겨져도 그것을 구할 수 없고, 사자가 미워도 그것을 멸할 수 없다. 얼룩말은 하나님이 사자에게 예비해 준 먹거리이다. 그러나 사자가 아무리 잡아먹어도 얼룩말은 멸종되지 않는다. 사자의 번식 수량은 아주 적고, 번식 속도 또한 아주 느리기 때문에 사자의 수량은 얼룩말을 초과할 수 없다. 아무리 잡아먹어도 사자의 수량은 얼룩말을 초과하지 못한다. 바로 이런 균형이다.

하나님이 그런 균형들을 유지시키는 목적은 무엇일까? 이것 또한 사람의 생존 환경에 관련되고, 사람의 생존에 관련된다. 얼룩말이나 사슴 같은 사자의 사냥감의 번식은 매우 느리고, 사자의 수량은 급격히 늘어난다면, 인류는 어떤 위험에 직면하게 될까? 사람들이 기르는 닭, 오리, 거위, 개가 먼저 사자의 사냥감이 될 것이다. 그것들은 집 밖에 있기 때문에 우선 사자의 사냥감이 된다. 그럼 그런 것들이 사자가 잡아먹기에 충분할까? 어떤 집에서 돼지 두 마리를 기르고 있는데, 사자가 산에서 내려와 잡아먹는다. 그럼 사자는 잡아먹은 후에 돌아갈까? 사자는 ‘산에는 먹을 것이 없으니 여기에서 기다리자. 이 집은 돼지를 기르고 있잖아. 돼지를 다 잡아먹고 나면 사람도 몇 명 있으니까! 안 그래도 다음 끼에 먹을 것도 없는데, 이렇게 다 예비되어 있잖아? 집에만 있고 계속 밖에 안 나올 리는 없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사람이 문을 나서면 한입에 덥석 잡아먹을 것이다. 그러면 인류는 아무런 반항할 능력도 없다. 그것은 아주 비참한 일이 아니겠느냐?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먹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사람을 잡아먹는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그 비극은 하나님이 정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재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하나님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것도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기에, 만물의 균형은 인류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그것에게 있어야 할 균형을 잃으면 안 된다.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산천과 호수로 인류에게는 아주 정상적인 생태 환경이 예비되어 있는데, 인류는 그런 생태 환경, 바로 그런 균형된 생태 환경이 있어야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만약 큰 나무나 작은 풀의 번식 능력이 아주 낮고 번식 속도가 아주 느리다면, 토양은 어떻게 되겠느냐? 토양은 수분을 잃지 않겠느냐? 토양이 수분을 잃게 되면 그것들은 병에 걸리지 않겠느냐? 토양이 식생을 잃고 수분을 잃게 되면, 곧 유실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막으로 대체될 것이다. 토양은 병에 걸려 사막화가 될 것이다. 토양이 변질되면 인류의 생존 환경도 따라서 파괴되고, 그와 동시에 초래되는 것은 재난일 것이다. 생태 균형과 생태 환경이 없어진다면 인류는 늘 만물의 불균형으로 인해 재난의 엄습을 받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환경이 균형을 잃게 되어 어떤 곳에 개구리가 많아지면 개구리의 생태 환경이 파괴된 것이다. 개구리들이 다 한곳으로 모여들고 그 수량은 급격히 늘어나는데, 심지어 사람들은 개구리가 도시에서 길을 건너고 수많은 개구리들이 큰길에서 뛰어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많은 개구리들이 사람의 생존 환경을 차지하게 되는 그런 것을 뭐라고 하느냐? 그것을 재난이라고 한다. 왜 재난이라고 할까? 인류에 대해 매우 유익한 그런 작은 동물들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곳에서 산다면 인류에게는 유익하다. 그것은 인류 생존 환경의 균형을 보호하고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일단 재난으로 변하면 사람의 생활 질서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개구리 몸에 있는 여러 가지 것들과 여러 가지 성분들이 사람 삶의 질과 생활의 질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심지어 사람 육체의 어떤 기관이 침습(侵襲)을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재난 중의 한 가지이다.

다른 한 가지 재난은 인류가 흔히 당하는 재난인데, 메뚜기 떼가 대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재난이 아니냐? 그것은 매우 무시무시한 재난이다. 사람에게 비행기, 대포, 원자탄을 만들 수 있는 아무리 큰 재능이 있을지라도 메뚜기 떼가 습격한다면 인류에게 대처할 어떤 방법이 있느냐? 대포로 쫓아 버릴 수 있느냐? 기관총으로 쫓아 버릴 수 있느냐?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럼 농약을 뿌려서 쫓아내면 어떨까? 그것도 쉽지 않다. 그럼 그 조그마한 메뚜기들이 왜 온 것일까? 양식을 먹으러 온 것이다. 메뚜기 떼가 가는 곳마다 농작물은 전부 사라진다. 메뚜기는 농작물과 양식만 먹어 치우는데, 한 번 지나가면 양식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농부들이 의지하는 농작물이 메뚜기 떼의 습격에 눈 깜짝할 사이에 1년 식량이 전부 먹혀 버릴 수 있다. 그 메뚜기 떼들이 온 것은 인류에게 무엇이겠느냐? 소란을 피우는 것만이 아니라 일종의 재앙인 것이다.

메뚜기 떼는 일종의 재앙이다. 그럼 쥐는 어떨까? 만약 쥐의 번식이 너무 빠르고, 쥐를 잡아먹는 부엉이나 갖가지 매들이 없다면, 쥐의 번식 속도는 너무 빨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될 것이다. 쥐가 넘쳐 난다면, 인류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겠느냐? 편하게 지낼 수 없다. 그럼 인류가 직면하게 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온역입니다.) 온역뿐이겠느냐? 쥐는 무엇이든 다 먹는다! 나무도 갉아 버린다. 어떤 집에 쥐가 두 마리만 있어도 그 집 사람들은 다 방해를 받을 것이다. 쥐는 어떤 때에는 기름을 훔쳐 먹고, 어떤 때는 양식을 까먹고, 어떤 때는 옷을 갉아 놓는다. 이런 것들이 쥐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고민거리이다. 조그마한 쥐라 해도 사람은 속수무책이라 그것에게 당해야만 한다. 어떤 때, 쥐는 주방 선반에도 기어오르는데, 그럼 거기 그릇들을 쓸 수 있겠느냐? 그 그릇도 쓰지 못한다. 소독해도 안 된다. 소독을 해도 마음이 꺼림칙하여 그릇을 버려야 한다. 쥐는 또 자기가 먹지 못하는 것도 갈기갈기 갉아서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다. 옷, 신발, 나무, 가구, 뭐든 다 갉아 놓는다. 쥐 떼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두 마리만 있어도 사람을 심하게 방해한다. 만약 재앙이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럼 조그마한 개미가 재앙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로 인류에게 초래되는 피해는 무시할 수 없다. 개미가 집을 갉아서 집이 무너지는 일은 이상하지 않다. 개미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목조 주택에서 흰개미나 흰개미 알을 발견하면, 미국에서는 아주 큰일로 보고 반드시 전문 회사의 기술자를 찾아 전문적인 방법으로 흰개미들을 죽여 버린다. 만약 죽여 버리지 않으면 그 집을 팔기 매우 어려워 큰 문제가 된다. 개미 떼가 말을 잡아먹는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커다란 말도 개미 떼가 달라붙어 한 번 지나가면 뼈만 남게 된다. 무섭지 않으냐? 말을 탔던 사람은 그 장면을 보고 어디로 도망쳤겠느냐? 옆에 호수가 있어서 뛰어들어 건너편으로 헤엄쳐 도망쳤다. 그리하여 살아남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 장면을 본 후, 자그마한 개미에게 그토록 큰 위력이 있다는 것과 하마터면 자신도 먹힐 뻔했던 그 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말이 없었다면 개미들은 틀림없이 먼저 그 사람을 먹었을 것이다. 개미들이 호수에 가로막혀 미처 다리를 놓지 못해 그 사람을 먹지 못한 것이다. 만약 물이 없었더라면 사람은 말과 함께 개미에게 먹혔을 것이다. 개미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각종 조류들이 재앙으로 번진다면 그것 역시 무서운 것이다. 즉, 어떤 동물이든 어떤 생물이든, 일단 그것의 균형을 잃게 되면, 그것들은 불규칙적이고 규율이 없는 범위에서 자라고 번식하고 생존할 것이다. 그러면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인류의 생존과 생활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재난을 가져다줄 수도 있는데, 심지어 인류는 치명적인 재난을 당하거나 멸망될 운명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할 때, 여러 가지 방식과 형식으로 만물이 균형을 이루게 하였고, 산천 호수의 생존 상태와 식물의 생존 상태도 균형을 이루게 하였으며, 각종 동물, 조류, 곤충의 생존 상태도 균형을 이루게 하였다. 그 목적은 각종 생물들이 다 하나님이 제정해 놓은 법칙에서 번식하고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물은 그런 법칙을 벗어날 수 없고, 그런 법칙을 깨뜨릴 수 없다. 인류는 그런 기본적인 환경에서만 아주 안전하게 한 세대 또 한 세대 살아가고 번성할 수 있다. 그 어떤 생물이든, 하나님이 정해 놓은 수량과 범위를 넘어서고 하나님이 주재하는 생장 속도, 생장 빈도, 생장 수량을 넘어선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각기 다른 정도로 파괴될 것이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생존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만약 한 가지 생물의 수가 너무 많으면, 그것은 인류의 먹거리를 빼앗을 것이고, 사람의 수원을 파괴할 것이며, 인류의 터전도 파괴할 것이다. 그러면 인류의 번성이나 인류의 생존 상태는 즉시 영향을 받게 된다. 예를 들면, ‘물’은 만물에게 있어 아주 중요하다. 만약 동물의 수량이 너무 많고, 쥐나 개미, 메뚜기, 개구리의 수량이 너무 많으면, 그 동물들도 모두 마실 물이 필요하므로 식수량도 그에 따라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고정된 식수의 원천, 물이 있는 영역에서 사람의 식수량과 수원은 줄어들 것이고, 인류에게는 물이 부족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식수는 파괴되고 오염되며, 각종 동물들의 수량이 초과되는 재앙이 임하게 된다. 그런 열악한 생존 환경에서 인류의 생존은 크게 위협받게 될 것이다. 만약 한 가지 생물이나 몇 가지 생물들이 그 정해진 수량을 초과한다면, 인류가 생존하는 공간의 공기, 온도, 습도에서 공기의 함량까지 다 어느 정도 해독을 입고, 파괴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런 상태에서 인류의 생존과 인류의 운명은 여전히 그런 생태의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런 균형을 잃게 된다면 인류가 호흡하는 공기가 파괴될 것이고, 인류가 마실 수 있는 물이 오염될 것이며, 인류에게 필요한 온도도 어느 정도 바뀌게 되고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인류의 고유한 생존 환경은 큰 영향을 받게 되고, 도전을 받게 된다. 인류의 기본적인 생존 환경이 파괴된 그런 상황에서 인류의 운명과 인류의 앞날은 어떠하겠느냐? 그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하나님은 만물이 인류를 위해 있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하나님이 만든 만물마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류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 하나님은 마음속에 모두 생각이 있고, 자신이 만든 만물의 모든 면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에게 있어 하나님이 행하는 매사는 다 아주 중요하고, 매우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만물 중의 어떤 생태 현상을 보게 되거나 만물 중의 어떤 자연법칙을 보게 된다고 해도 하나님이 이 만물 중의 하나하나를 만든 필요성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너는 무지한 말로 하나님이 만물을 그렇게 안배하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류에게 공급하는 것에 대해 함부로 논단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이 만든 만물의 법칙에 대해서도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출처 : 하나님의 약속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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